뇌출혈, 뇌전증,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 남자의 이야기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그날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인생 전체는 그날을 기준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 말입니다.
저에게 2013년 어느 주말 특근 날이 그랬습니다.
눈앞 모니터가 4개로 흔들려 보이던 날
당시 저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있었습니다.
업무 압박, 미래에 대한 부담, 책임감, 평가와 인간관계까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 대낮인데 갑자기 쏟아지는 졸림
- 살짝 어지러운 느낌
- 편두통 같은 묵직함
- 듀얼모니터가 여러 개로 흔들려 보이는 시야 이상
- 상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느낌
당시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원래 그렇습니다.
웬만하면 참고, 버티고, 일단 출근합니다.
몸이 보내는 경고보다 일정이 우선이고,
뇌의 SOS보다 회의 일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몸은 회의 요청이 아니라 “강제 종료”를 선택합니다.
“딱 잠든 느낌” 그리고 쓰러짐
그날 저는 갑자기 잠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주변 동료들에게 들었습니다.
발작하면서 책상, 서랍, 의자, 사무기기 등에 얼굴과 몸을 부딪혔고,
코와 얼굴엔 상처가 생겼다고 합니다.
심한 경련 중 혀를 깨물어 혀끝 일부가 손상되었고,
실금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응급실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 동료 한 명은 제 바지를 세탁해주었고
- 다른 형님은 제 카드로 응급차 비용을 결제해주셨다고 했습니다.
평소엔 서로 농담하고 장난치던 사람들이,
정작 사람 하나 쓰러지니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인생은 참 이상합니다.
평소엔 몰랐던 사람의 진심을,
가장 약해진 순간에 보게 됩니다.
뇌 MRI 속 “500원짜리 피”
큰 병원에서 PET-CT와 MRI를 찍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측 뇌에 출혈이 있습니다.”
“해면상혈관종입니다.”
해면상혈관종.
쉽게 말하면 정상 혈관처럼 튼튼하지 않은, 약한 혈관 덩어리가 뇌 안에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제 출혈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신기한 건 인간의 뇌는 마지막까지 버틴다는 점입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스트레스는 단순 “기분 문제”가 아닙니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 코르티솔 증가
- 자율신경계 과활성
- 혈압 변동
- 수면 질 저하
- 뇌 피로 누적
등이 지속됩니다.
즉 몸은 계속 “전투 상태”가 됩니다.
문제는 인간은 그 상태에 너무 잘 적응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험 신호조차:
- “피곤하네”
- “커피 한 잔 마시면 되겠지”
- “이번 주만 버티자”
로 번역해버립니다.
하지만 뇌는 생각보다 정직합니다.
한계가 오면 결국 멈춥니다.
강제로라도.
중환자실에서 배우는 인간의 본질
저는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코에는 산소 호스가 꽂혀 있었습니다.
이후 일반 병동으로 옮겨져 한 달 가까이:
- 먹고
- 자고
- 쉬고
- 수액 맞고
그렇게 회복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체중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가리지 말고 잘 드세요.”
“운동도 하세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인간 회복의 본질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을요.
현대인은:
- 잠 줄이고
- 긴장하고
- 경쟁하고
- 몸을 계속 몰아붙이지만,
정작 뇌와 몸이 원하는 건:
- 수면
- 영양
- 안정감
- 혈류
- 적절한 움직임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한마디
나중에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직장 상사에게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우리 애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했냐고.”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아, 내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구나.
부모는 자식이 몇 살이 되어도 자식입니다.
당시 30대가 되어도,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도,
중환자실에 누워 있으면 결국 부모 눈엔 그냥 “아들”입니다.
사람은 큰 병 이후 두 종류로 나뉜다
큰 병 이후 사람은 보통 두 방향으로 갑니다.
1. 계속 무너지는 사람
세상과 자신을 원망하며 무기력에 잠식됩니다.
2. 삶의 본질을 다시 배우는 사람
평범한 일상의 기적을 보기 시작합니다.
저는 운 좋게 두 번째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했습니다.
복직 후 저는 달라졌습니다.
- 동료들에게 더 후해졌고
- 더 긍정적으로 말하려 했고
-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고
- “오늘 무사한 하루” 자체에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 자극
- 경쟁
- 과시
- 즉각적 쾌감
에 많이 끌렸다면,
이후에는:
- 건강
- 꾸준함
- 관계
- 성장
- 절제
쪽으로 삶의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늦었지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뇌출혈과 뇌전증을 겪은 사람이
지금은 마라톤을 뜁니다.
풀코스를 뛰고,
트레일을 뛰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달립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는 것을요.
처음 폭발적으로 달리는 사람보다:
- 자기 페이스를 알고
- 회복을 알고
-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결국 오래 갑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절대 안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 무너진 뒤에도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사람”
이라는 것을요.
독자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
혹시 지금:
- 이유 없는 피로
- 만성 스트레스
- 수면 부족
- 멍한 상태
- 몸의 이상 신호
를 계속 무시하고 계신가요?
몸은 생각보다 오래 버팁니다.
하지만 뇌는 어느 순간 반드시 말을 겁니다.
문제는 대부분 그 말을 너무 늦게 듣는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쉬어도 됩니다.
조금 늦어도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깁니다.
그리고 의외로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달렸는가보다,
“끝까지 살아남아 내 사람들과 함께 가는가”
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낸 당신의 뇌와 몸에게,
조용히 감사 한 번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의 이런 경험이 독자님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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