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달려도 괜찮았습니다. 다시 달린다는 것 자체가 기뻤으니까요.
한동안 쉬었습니다.
정확히는 몸이 쉬게 만들었습니다.
왼쪽 고관절이 찌릿했고, 걸을 때도 어딘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고, “아… 이거 잘못하면 길게 간다.” 싶은 감각이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를 악물고 뛰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릅니다.
40대 꽤 넘어가니 되니 몸과 싸우기보다 몸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강함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 뛰고 하루 쉬기.”
일명 ‘하뛰 하쉬’ 모드로 천천히 달리고 있습니다. 😄
속도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아직 스피드를 올리면 몸이 경고를 보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기록은 느려졌는데 행복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이번 광교호수공원 러닝도 그랬습니다.
“고래를 잡으러 광교로 갈까요?” 🐳
가민 제목을 그렇게 적었습니다.
사실 누가 보면 유치할 수도 있습니다.
다 큰 아저씨가 새벽에 혼자 호수 돌면서 “고래 잡으러 간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러닝이라는 취미는 원래 조금 유치해야 오래 갑니다.
닉네임도 만들고,
이상한 러닝 제목도 적고,
고래 모양 GPX 지도 보며 혼자 감탄하고,
달리고 나면 “오늘은 심박 안정적이었다…” 같은 말을 진지하게 합니다.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닐 수 있는데,
그 작은 놀이들이 삶을 버티게 합니다.
어른에게도 ‘재미’는 필요합니다.
특히 책임이 많아질수록 더 그렇습니다.
이번 러닝 기록
- 거리: 10.96km
- 평균 심박수: 119bpm
- 평균 페이스: 7:45/km
- 총 시간: 1시간 24분 59초
솔직히 예전의 저라면 만족 못 했을 기록입니다.
한창 달릴 때는 페이스를 계속 확인했고,
심박을 보고,
VO2Max를 보고,
“오늘 왜 이렇게 느리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천천히 뛰면서 호수를 봤고,
구름을 봤고,
바람을 느꼈고,
몸 상태를 계속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다시 뛰고 있구나.”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감사라는 걸요.
느린 조깅이 몸에 좋은 이유 (과학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러닝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빠르게 뛰려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몸을 바꾸는 건 느린 러닝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저강도 유산소(Z2 러닝)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1. 미토콘드리아 효율 증가
우리 몸의 세포 안에는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가 있습니다.
천천히 오래 달리는 운동은 이 미토콘드리아를 활성화합니다.
쉽게 말하면 몸의 “연비 시스템”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같은 움직임에도 덜 지치고,
회복도 빨라지고,
지구력도 올라갑니다.
마라톤 고수들이 조깅을 엄청 많이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2. 지방 대사 능력 향상
느린 러닝은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그래서 꾸준히 조깅을 하면 몸이 점점 “오래 가는 체질”로 변합니다.
폭발적인 엔진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디젤 엔진 같은 느낌입니다.
40대 이후에는 이 능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 자체가 이제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뇌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
재미있는 건 러닝이 단순히 다리 운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천천히 달리면 뇌의 Default Mode Network(DMN)가 활성화되며 생각 정리가 됩니다.
그래서 러닝하다 보면 갑자기:
- 일 문제 해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정리되기도 하고,
- 인생 방향이 조금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느린 조깅을 “동적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고요해지는 상태 말입니다.
예전의 저는 늘 증명하려 했습니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멋지게.
운동도 그랬고, 삶도 그랬습니다.
몸을 과시하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고,
기록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제는:
- 오래 운동하는 몸,
- 가족과 오래 살아갈 건강,
- 무너지지 않는 멘탈,
- 꾸준함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JTBC 풀코스 G그룹 출발 3시간12분 완주도 물론 기뻤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이런 날이 더 소중합니다.
“통증 없이 천천히 10km를 웃으며 달린 날.”
이게 생각보다 큰 행복입니다.
러닝은 결국 삶을 닮아갑니다
젊을 때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은 깨닫게 됩니다.
끝까지 가는 사람이 강하다는 것을요.
빠르게 타오르는 사람보다,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요.
그래서 요즘 제 목표는 단순합니다.
오늘도 다치지 않고 달리는 것.
내일도 다시 달릴 수 있는 것.
그게 결국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며 🐋
광교호수공원의 고래는 사실 진짜 고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래를 쫓으며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돈,
누군가는 성공,
누군가는 인정.
그리고 저는 요즘,
조금 더 건강하고 오래 달릴 수 있는 삶을 쫓고 있습니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대신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달려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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