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가 아직 밤의 차가움을 품고 있을 무렵, 저는 조용히 운동화를 끈에 단단히 묶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속초에 오면 꼭 한 번은 달려보고 싶었던 곳, 바로 영랑호였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조깅은 언제나 특별한 설렘이 있습니다. 익숙한 몸의 리듬은 그대로인데, 풍경과 공기, 소리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낯섦이 오히려 심장을 더 차분하게, 동시에 더 또렷하게 뛰게 만듭니다.
영랑호 초입에 들어서자 물 위로 아주 엷은 안개가 깔려 있었습니다. 아직 해는 완전히 떠오르지 않았고, 호수 위의 수면은 유리처럼 고요했습니다. 발걸음이 데크를 밟을 때마다 ‘탁, 탁’ 하는 작은 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퍼졌고, 그 소리는 다시 숲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 그러나 전혀 쓸쓸하지 않은 고요였습니다.
호수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페이스를 맞추며 달렸습니다. 숨은 전혀 가쁘지 않았고, 심장은 오히려 낮은 박자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겨울 초입의 속초 새벽 공기는 차지만, 그 차가움이 오히려 폐 깊숙이 들어오며 머리를 맑게 씻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바다와 숲과 물의 냄새가 섞여 들어왔고, 내쉴 때마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잡념이 함께 빠져나가는 듯했습니다.
호수 반대편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연한 회색, 그 다음에는 옅은 주황빛, 그리고 조금씩 금빛이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는 눈부시게 빠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느릴 만큼 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속도와 색감이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다 말고 몇 차례 걸음을 멈추어 호수 위에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물 위에 반사된 빛은 하늘보다 더 부드럽고, 더 깊어 보였습니다.
약 5km 정도를 도는 동안 제 몸은 이미 완전히 깨어 있었습니다. 차가운 공기 덕분인지, 반복된 호흡 덕분인지, 아니면 이 풍경 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머릿속은 놀라울 정도로 정돈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해도 충분하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기록이나 페이스를 의식하지 않는 러닝은 이렇게 마음을 먼저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조깅을 마치고 저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20층 높이의 스타벅스로 옮겼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올라가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속초 시내와 영랑호가 점점 작아졌고, 대신 시야는 점점 더 넓어졌습니다. 문이 열리자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속초의 아침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막 떠오른 해는 생각보다 더 밝고, 더 똑바로 도시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건물 사이로 길게 드리운 햇살, 호수 위로 번지는 금빛 물결, 그리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바람의 흔적까지 모든 것이 한 편의 영상처럼 이어졌습니다. 조깅으로 이미 몸은 따뜻해졌고, 그 위에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더해지니 마음까지 천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저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만 존재하는 시간. 대부분의 일상은 늘 다음 일정과 해야 할 일에 끌려가듯 흘러가지만, 이 순간만큼은 오직 숨 쉬고, 바라보고, 마시는 행위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러닝이 늘 제게 주는 선물은 바로 이런 순간들입니다. 몸은 분명히 피로해지는데, 정신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맑아집니다.
창가에 앉아 내려다본 영랑호는 조금 전 제가 달렸던 그 길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몇 분 전, 그 길 위에서 숨을 고르며 달리던 제가 이제는 높은 곳에서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인상 깊었습니다. 인생도 종종 이런 것인지 모릅니다. 지금은 그저 발밑만 보이며 한 걸음씩 내딛는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한 발짝 물러나 보면 그 모든 걸음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커피가 절반쯤 비어갈 즈음, 창밖의 빛은 이미 완전한 아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도시의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한 모금을 천천히 마시며 마음속으로 아주 작은 감사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렇게 달릴 수 있는 몸,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눈, 이렇게 멈춰 쉴 수 있는 여유에 대해.
속초 영랑호에서의 새벽 조깅과, 20층 높이에서 맞이한 일출 커피 한 잔.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여행의 한 장면일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조용한 호사’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 더 깊었고, 빠르지 않아 더 또렷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몸이 지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때 이 아침을 종종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영랑호 위로 천천히 떠오르던 해, 차가운 공기 속에서 고르게 이어지던 호흡, 그리고 높은 창가에서 내려다보던 조용한 도시의 풍경을요. 그런 기억 하나쯤 품고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삶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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